synesthesia

Description

 

 

 

 


경수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살았다. 경수의 동네가 얼마나 두메산골이었냐면 왠만한 사람들은 경수가 사는 곳의 지명을 몰랐다. 그 만큼 폐쇄된 지역이였다. 명절 때 특선으로 방송되었던 '웰컴투 동막골'의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동네 처럼 전쟁이 나도 모르고 살만큼 깊숙한 곳에 있었으나, 살림에 필요한 전자기기는 한치의 오작동 없이 멀쩡히 돌아가는 곳이었다. 경수는 이 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부모님께 듣기로는 부모님은 다른 곳에서 사시다가 이 곳으로 오셨다고 하였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아 헤메시다 찾아온 곳이라고 하셨다. 요즘 세상에 현대문물의 접근없이 살아가는 이런 동네를 찾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용케 그 것을 해냈고, 그 결과 경수는 이 곳에서 살고있었다. 

워낙 소규모이다 보니 시골인심이 무엇인가를 알기 좋은 곳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문을 잠구는 법이 없었으며 그냥 서스럼 없이 제 집 드나들 듯 서로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 것은 경수도 마찬가지였다. 이 동네에선 경수의 부모님이 그나마 어린 편이었고 노인 분들만 계셨기 때문에 경수의 또래가 없었다. 그런 경수가 어울리는 사람은 부모님 또래로 보이는 옆 집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경수가 태어날 적 부터 계셨는데 바로 옆 집에 살다보니 어린 경수를 데리고 어르며 엄청 예뻐했다. 경수도 곧 잘 아저씨를 따르며 지냈다. 아저씨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바닥나는 일이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풀어 경수에게 들려주었다. 

 

" 경수야, 나중에 이 곳을 벗어나 도시로 가면 우스갯소리라도 아저씨가 해준 얘기는 하지말아라. "

" 왜요? "

" 어른한테 말 대꾸 하지마. "

" 왜요? "

" 뒤질래. "


경수가 왜요? 를 반복하자 그는 성을 냈다. 경수는 배를 잡고 크게 웃어재꼈다. 그는 편안한 사람이었다. 경수가 때때로 지나치게 버릇없이 굴어도 화내는 법이 없었다. 경수는 자신이 과했을 땐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장난기가 많은 그는 종종 경수에게 화난 척을 하며 근엄한 어른 흉내를 냈지만 표정은 영락없이 우스꽝스러움을 유지했다. 경수도 그와 함께 지내면서 장난끼만 늘은건지 그를 약올리며 놀리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아저씨는 어린게 어른을 놀린다며 좀 만 더 크면 때려잡겠다고 우는 시늉을 했다. 경수와 그의 유대감은 쉽사리 끊어질만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또래가 없는 경수에게 유일한 친구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경수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아저씨의 이야기는 대부분 자신의 과거 무용담으로 이루어져있다. 아저씨는 과거에 소위 조폭으로 불리는 사람들과 비슷한 류였다. 경수가 얘기도중 조폭이요? 하면 아저씨는 그런 조무래기들과 비교하지 말라며 울컥했다. 좀 더 큰 스케일의 조직이었다고 설명하며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의 표정은 잔뜩 신이나 보였다. 이야기는 퍽이나 생생한 느낌을 가져다 주어서 경수는 항상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기다렸다. 경수가 왜 퍽이나 생생한 느낌을 가져다 주어서 라고 표현하였냐면 아저씨의 이야기들은 정말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아저씨는 아무리 보아도 그런 위험한 일을 했던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이중스파이를 해 적대 조직을 괴멸시켰다던가, 조직 내의 배신자를 찾아내 큰 공로를 세웠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없게 느껴졌다. 

 


경수가 어릴 적엔 의심없이 받아들였지만 어느새 크면서 자기주관이 생기기 시작하자 경수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진짜같은 가짜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아저씨도 그 것을 느꼈는지 종종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섭섭하구나. 어릴 적엔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다 믿었는데. 라고 말했다. 그리곤 잔뜩 미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경수의 구렛나루 털을 쥐어다 뽑았다. 그럼 어쩔 줄 몰라하던 경수가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그리곤 도망가는 아저씨를 따라 뜀박질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산골이라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정식 학교는 아니었지만 경수는 동네에 젋을 적 선생님을 하던 빨간지붕 할아버지에게 가서 도시의 아이들이 배우는 것과 같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배워나갔다. 경수는 딱히 그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적엔 그저 놀기만 하며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산수나 영어같은 것을 머릿 속에 우겨넣는것이 고역이었던 탓이다. 오늘도 딴 짓을 하며 깐죽거리던 경수는 된통 혼나며 울며겨자먹기로 문제를 풀었다. 이만 가도 좋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경수는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좋냐며 혀를 끌끌 차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챙겨온 보따리를 들어 빨간지붕을 벗어나는 경수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경수는 급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개울을 건넜다. 폴짝폴짝 뛰어 단숨에 반대편에 도착하자 제법 평탄한 오솔길이 나왔다. 다리에 힘을 바짝 주어 뛰기시작한 경수는 저 멀리 보이는 제 집을 향해 순식간에 달음박질했다. 어느새 주위는 슬슬 땅거미가 지고있었다. 경수는 붉은 물감이 퍼져나가듯 물든 하늘에 한 번 시선을 주고 더욱 급해졌다. 제 집 대문 앞에 다달아 문을 열어재껴 평상에 가방을 내팽겨친 경수는 다시 대문 밖으로 나와 멀지 않은 길을 달렸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빨리 듣고싶었다. 허무맹랑했지만 그 만큼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저씨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경수의 부모님은 누가 네 부몬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리셨지만 딱히 개의치 않아하시는 듯 했다.

 

끼이익 녹슨 대문이 열리며 작은 집이 드러났다. 경수는 재빨리 안채문을 열어재끼고 아저씨가 있을 안방으로 향했다. 여느때처럼 누워서 지지직 거리는 고물 테레비를 보고 있으리라 짐작하며 뛰쳐들어간 안방에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러나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아저씨는 누워서 테레비를 보고있지 않았다. 그는 손바닥만한 작은 상자를 쓰다듬으며 울고있었다. 경수는 쉽사리 아저씨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저런 모습의 아저씨는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조금도 짐작가지 않았다. 경수가 결코 작은 소리를 내며 들어옴이 아닌 것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경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경수는 조심스레 방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또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드르륵 하고 미닫이식 문이 닫혔다. 그제서야 아저씨는 경수의 존재를 눈치챈 듯 급히 옷 소매로 얼굴을 문지르곤 애써 웃으며 경수를 맞이했다.

 

" 경수 왔냐. "

 

목소리는 잔뜩 잠겨있었다. 항상 장난끼가 가득하던 음성에 힘이 잔뜩 빠져있었다. 정말 아저씨가 허무맹랑한 이야기 속의 지친 남자같이 느껴졌다. 밝은 목소리로 자랑스레 내뱉던 이야기들은 실상 파고들면 음울하기 그지 없는 것 들이었으니까. 경수는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아저씨는 그런 경수를 보며 한 껏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평소의 우스꽝스런 얼굴로 돌아왔다. 경수는 안심했다. 아저씨가 왜 울고 있었던 것인지 묻고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그저 아저씨의 웃음에 평소와 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 다는 것에 안심할 뿐이었다. 경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아저씨가 앉아있는 자리로 다가가 주저앉았다. 

 

" 오늘은 긴 이야기를 하지 못 할 듯 하구나. "

 

아저씨의 목소리에서 음울한 향이 새어나왔다. 경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향을 털어냈다. 

 

" 경수야. 혹여 서운해 말고 들어라. "

" 무슨 일 있으세요? "

 

결국 경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저씨는 조금 놀라는 듯 하더니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혹여 서운해 말고 들으라는 문장은 뜻이 너무 암울하기 짝이없었다. 경수는 아저씨에게 서운할만한 일이 없었다. 오히려 항상 감사했으면 감사했지. 어째서 아저씨가 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경수는 빨간지붕 할아버지네 집에서도 안하던 깊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경수의 말에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곤 충분히 경수에게 서운하고 충격적일 말을 내뱉었다. 

 

" 아저씨 이사가. "

" 네? "

 

parden me? 다시 말해주실래요? 경수는 빨간지붕 할아버지가 그렇게 외우랄땐 안 외워지던 영어문장이 적절한 타이밍에 절로 떠오르자 매우 놀랐다. 그런 놀람도 잠시 경수는 정말로 아저씨의 말대로 섭섭해짐을 느꼈다. 한참을 자리에 서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경수가 이해되는지 아저씨는 자신이 들고 있던 조그마한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아저씨게 줄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구나."

"언제, 언제 가는데요?"


  경수의 목소리가 덜덜 떨려 삐져나왔다. 아저씨는 말없이 테레비를 쳐다보다가 경수가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듯 최대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경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가만히 앉아 있는 아저씨를 원망스러운듯 쳐다보고 있었다.


"내일."


  멍청하게 문지방에 서 있던 경수가 비틀거렸다. 자신의 몸을 지탱치 못하고 비틀거리자 아저씨는 놀랐던지 경수의 옆으로 다가왔다. 경수는 다가오며 손을 뻗는 아저씨의 손을 쳐냈다. 경수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것을 본 아저씨는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이나 집 안을 둘러보던 경수는 아저씨 진짜 미워! 라는 소리를 남겨두고 집 밖을 달려나갔다. 아저씨는 언제나 경수에게 그런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했다. 언제나 당하는 것은 경수였고, 아저씨는 놀리면 엉엉 우는 경수를 달래기에 바빴다. 이번에도 그러한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잡아주길 바랬는데, 야속한 아저씨는 경수가 달려나간 문지방만 응시하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집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미안하다며 울먹이는 목소리 뿐이었다.

 

  아저씨는 원래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도 적고 교류도 적은 이 곳에 외지인으로 온 거라고 했다. 처음엔 사람들도 많이 경계 했었는데, 아저씨의 성격이 유난히 살가웠던 탓에 이 곳에서 적응하기는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아저씨는 이 곳에서 나고 살았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있었다. 언젠간 떠날 거야. 아저씨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할머니가 했었던 말도. 경수야, 원래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말 없이 올 때처럼 말 없이 떠난단다. 그래도 십몇년을 함께 살았던지라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훌쩍 떠나버린다는 아저씨의 말은 아직 이별을 많이 경험치 못한 어린 경수에겐 미울 수 밖에 없었다. 경수는 방 안에 처박혀 엉엉 울었다. 부모님도 무슨 일인지 이미 들었던 모양인지 그저 방 밖에서 우는 경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절부절 할 수 밖에 없었다.

 

  경수의 부모님은 아저씨가 떠난다는 말을 듣고 속상할 경수를 위해 특별히 경수가 좋아하는 것들로 준비했다며 저녁을 내왔다. 경수는 멍한 표정으로 식탁만 응시했다. 그러다가 아저씨가 주려던 선물을 손으로 내려치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저씨가 밉다가도, 준 선물을 생각없이 바닥에 내팽겨치고 왔다는 생각이 들어 그게 속상해 경수는 또 엉엉 울고 말았다. 아저씨가 준 선물을 다시 챙기러 가기엔 아저씨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경수의 본성이 착했던 지라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먹을 것들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그것들을 물릴 만도 한데 경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것들을 꾸역꾸역 집어 삼켰다.

 

"경수야…. 그냥 아저씨한테 한 번 가보는게 어때?"

 

  밥을 잘못 먹었는지 끙끙대던 경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응시하던 아버지의 한마디였다. 경수는 멍하게 천장을 응시하다 그 눈빛을 돌연 아버지에게로 옮겼다. 입을 꾹 다물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을 구겨신었다. 경수의 부모님은 굳이 일찍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들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이 갔던 까닭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한 마디를 남긴 뒤 밖으로 뛰었다. 비록 아저씨가 말 없이 갑작스레 떠나는 것은 밉고 원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십 몇년을 동거동락하듯 살았다. 말 없이 떠나는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저씨의 연락처나 이메일 정도라도 알아둔다면 연락정도는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길지 않은 거리를 후닥닥 뛰었다.

 

  숨을 꾹 참고 단숨에 달려 아저씨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피잉-! 무언가 재빠르게 날아가는 소리와 동시에 물체가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경수는 눈물 범벅이던 얼굴을 닦아냈다. 집 안에 아저씨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런데 콧망울부터 물이 번지듯 쇠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경수는 코를 틀어막았다.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확실하게 들리면 들릴 수록 그 냄새는 점점 선명해졌다. 질식할 정도의 심한 쇠냄새였다. 이 냄새, 어디서 맡아본듯 했다. 바로 옆 집 정아저씨가 동물들을 도축 하고 올 때면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 그래, 동물의 피냄새였다. 경수는 코를 틀어막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콧망울부터 퍼지는 이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숨이 거칠어졌다. 심한 쇠냄새 때문에 숨을 쉬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드는 이상한 생각 때문에 눈물이 차올랐다. 여기서 울고만 있을 수는 없어. 생각을 마친 경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멀지 않은 곳에 집이 몇개 있으니 크게 소리지르면 이상해서라도 집 주위를 둘러보러 올 거라고 생각했다.

 


"아저씨-!!"

 

  경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문을 열었다. 방안에 있던 뭔가가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경수는 미닫이 문으로 되어 있던 문을 열었다. 아저씨를 치고 도망간 뭔가가, 도망가고 있었다. 달빛에 비춘 그의 손목은 알 수 없는 문양의 문신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를 신경 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진 아저씨가 생각났다. 아니겠지, 괜한 기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문을 열면 항상 있던 자리에 아저씨가 있을거야. 항상 아저씨가 있던 자리로 향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던 아저씨는ㅡ,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경수는 무의식적으로 아저씨가 죽었음을 깨달았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무언가 체념한 표정이었다. 주위에서 시끌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수는 축 늘어진 아저씨의 몸뚱아리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 아저씨. 여기서 뭐해요… 아저씨, 아저씨이‥ 일어 나 봐요. 응?"

 

 경수의 말은 울음에 먹혀 잔뜩 뭉개져 있었다. 몸뚱아리에서 나온 핏물이 경수를 적셔도 경수는 아저씨의 시체를 붙들고 아닐거라며 미친사람처럼 고개를 저었다. 이 소란을 안 마을사람들이 집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어두웠던 집 안에 불이 켜졌다. 익숙한 얼굴의 마을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경수와 아저씨를 쳐다보는 게 시야에 담길 때 쯤, 경수의 몸뚱아리는 눈을 까뒤집고 바닥으로 힘없이 곤두박질쳤다.

 

 

 


"범인을 찾을 수가 없디야. 그 상황 그 자리에 있던 경수가 제일 의심스러웠다는디 경수가 그런 짓을 할 애냐고! 경수가 박씨를 얼마나 따랐는디!"

 

  눈 앞이 흐릿했다. 여기는…? 가물가물한 시야 앞에 눈물을 그렁그렁 단 엄마가 보였다. 아저씨는? 하고 물으려 입을 뗐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아, 아저씨는 죽었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경수를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경수는 입을 다물었다. 경수의 엄마가 옆으로 다가와 경수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었다.


"아저씨는 내일 장례식 치르기로 했어."
"…엄마."


  경수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그 덕에 입에서 튀어나오는 목소리는 쇠로 긁는 것 같기도 했다. 경수의 엄마는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경수야, 우리 다시 서울 가자. 생각 해 보니까, 학교도 제대로 다녀야 하고. 또…."

 

  경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은 이 산골자락을 퍽이나 마음에 들어했었다. 매연도 없었고, 공기도 깨끗했고. 모두들 이방인 같던 경수네 식구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갈 길 잃은 나그네들이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냥 내치는 법이 없었다. 모두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따뜻하게, 배불리 밥을 먹였다. 산을 타던 사람들을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자신들의 가족에게서, 혹은 나라에게서 버림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여기 있는 모두는 각자의 아픔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경수의 행동에 기어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박씨네 집은 태워버릴거야. 장례식 끝나는대로 물건들 다 정리해서 깨끗하게 보내 줘야되니까."

 

  모자를 푹 눌러쓴 이장님이 말했다. 따로 이장님을 뽑을 필요는 없었지만 혹시 모를 주민들의 화합을 위해 만들어진 이장님이라고 했다. 모두들 편히 쉬라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경수를 한 번, 그리고 경수의 엄마를 한 번 응시하더니 우르르 바깥으로 나갔다. 경수의 눈이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마치 발작을 일으키는 형태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깜짝 놀란 경수네 엄마가 경수의 팔을 붙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경수야. 경수야…. 그러나 경수의 기억에 남는 건 진한 피비린내 뿐이었다.

 

 

 

  장례식은 조촐하게 치뤄졌다. 박씨네 아저씨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장례식을 치를 때 쯤, 나는 박씨네 아저씨가 했던 말이 조금씩 실감이 났다. 어렸을땐 믿었지만 커 가면서 현실성이 없던 그 이야기들. 박씨네 아저씨는 분명 자살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박씨네 아저씨를 죽였던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치닫자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박씨네 아저씨가 웃으며 해줬던 이야기들이 그리웠던 탓이다. 경수는 하루에도 몇번씩 웃고 있는 아저씨의 영정사진을 멍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그러고보니 변변한 사진 한 장도 가지고 있는 게 없었다. 3일장 이튿 날 새벽쯤이었다. 잠 좀 자 두라는 엄마의 말에 장례식장 구석에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였다. 자려고만 하면 코를 쑤시는 역한 피비린내 덕에 잠을 못 잤던게 이틀째였는데, 처음으로 단잠에 빠지려는 순간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장례식장에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딱딱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구석에 쓰러져있듯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경수를 가리키며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절을 하고, 돈봉투를 집어넣었다. 말없이 딱딱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손등에 그 날, 아저씨를 죽인 남자의 것과 비슷한 문양의 문신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왔을 때처럼 아무런 말 없이 그곳을 벗어났다. 경수는 한참이나 풍채좋은 사내들에게서 눈을 떼어내지 못했다.

 

  시신을 발인했다. 화장터에 아저씨의 화장한 유골을 옮기는데, 그렇게 커다랗고 무겁던 사내가 조그마한 단지 안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경수는 납골당으로 그의 유골을 옮겼다. 따라오는 사람들은 슬픈 표정이었지만, 울지 않았다. 아저씨는 평생을 울어 줄 사람도 없이 그렇게 살았구나. 쓸쓸했겠구나, 했다.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경수는 조심스레 납골당에 단지를 놓아두고 한 발자국 멀어졌다. 아저씨, 자주 올게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 말이었다. 경수는 그렇게 양 손을 꼭 쥐고 기도했다. 제가, 제가 복수할게요. 꼭 복수할게요, 아저씨.

 


"박씨네 집은 태우는데, 최대한 주위에 피해 안 가게…."

 

  그 말을 듣자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저씨가 주려던거! 분명히 아저씨네 집에 남아 있을 것이 틀림 없었다. 경수는 그들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갔다. 그들은 뭐냐는듯 경수를 응시했다.

 

"아저씨가 주려던거 있어요. 아직 태우면 안돼요."

 

  그제야 통화를 멈춘 이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길로 경수는 부모님의 차를 타고 다시 산골로 향했다. 며칠 오지 않았을 뿐인데 잔뜩 어색해진 집안에 발을 들였다. 곳곳에 말라붙어 있는 피 덕에 토악질이 날 것 같았지만 묵묵히 그것을 삼켰다. 아저씨가 죽은 자리에서 토를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경수는 아저씨가 주려던 조그마한 선물상자를 찾았다. 이 곳에서 선물상자 따위가 있을리가 만무했다. 이미 잔뜩 낡아버린 선물상자는 아저씨의 소중한 것이 들어있을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집안을 뒤져도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저씨를 죽인 그 사람들이 가져갔나? 그러나 그 물건을 왜? 경수는 아저씨가 죽었던 자리 옆에 앉았다.

 

"아저씨, 아저씨가 주려던 물건이 안 보여요…. 나한텐 아저씨 마지막 기억인데, 그게 안 보여요…."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날 것만 같았다. 경수는 무릎을 끌어 안았다. 항상 아저씨가 앉아 있던 자리에 엉덩이를 대고 아무런 멋도 없는 그림액자를 응시했다. 어느데서나 살 수 있는 싸구려 그림액자. 경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액자를 들췄다. 보기보다 꽤 큰 홈이 파져 있었다. 천천히 그 안을 더듬었다. 달그락, 경수의 손에 닿는 각진 물체가 있었다.

 경수는 놓칠새라 그것을 손에 꽉 쥐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선물상자 뿐만 아니라 아저씨와 그의 친구들이 찍혀있는 듯한 사진이 끼워진 낡은 다이어리였다. 많이 젊었지만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덩치와 험악해 보이지만 어딘가 쑥스러워 보이는 미소. 아저씨였다. 경수는 그것들을 챙겨들었다. 그리곤 아저씨가 맨날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꺼냈다. 아저씨에게 항상 이야기만 들었던 경수가 해 줄수 있는 일이라곤, 이런 일 뿐이었기 때문에. 반나절 정도 지나고, 경수의 부모님이 경수야, 이제 집으로 가자. 응? 하고 애원 할 때 쯤에야 경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항상 아저씨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저씨가 앉아 있던 자리엔 동그랗게 홈이 파여 있었다. 경수는 말없이 웃었다.

 

"또 올게요, 아저씨."

 

  힙겹게 입을 떼어내는 경수의 눈동자엔 조금의 후련함이 담겨 있었다. 경수가 집 밖으로 나오자 주위에 몰려 있던 마을 주민들이 주위에 휘발유를 뿌렸다. 그리고 경수를 뒤로 무르게 했다. 횃불을 든 이장님이 그것을 집 위로 불을 붙였다. 가구도,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아 냉기로 가득해진 집은 잘도 활활 타올랐다. 타오르는 집을 보며 경수의 어깨를 꽉 쥐어오는 엄마에게 경수가 중얼거렸다.

 

"엄마."
"…응."
"아저씨 죽인 사람, 찾아서 내가 복수 할 거야."

 

  꼭. 뒷 말을 삼킨 경수가 주먹을 꾹 쥐었다. 경수의 엄마는 그래, 하면서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복수, 그 말을 하는 경수의 눈이 제법 형형하게 빛났다.

Fore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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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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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zvimindayoung #1
I can't understand this much korean. :,(